
응급실의 사전적인 의미는 상태가 매우 위태롭고 급한 환자를 치료하고 돌볼 수 있는 시설이다. 응급한 상황에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환자의 경중이나 시급성을 따지지 않고 모두 응급실에 몰아넣을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겠는가. 지금 대한민국 수사 시스템이 마주한 풍경도 이와 다르지 않다.
순직해병·내란·김건희 등 '3대 특검'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정치권에서는 '2차 종합특검'과 '통일교 특검'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다. 특별검사 제도는 본래 검찰 수사의 공정성이 의심될 때 사용하는 '최후의 보루'다. 하지만 특검은 이제 예외가 아닌 일상적인 카드가 돼 버렸다. 특검 만능주의는 '365일 상시 특검 체제'라는 기이한 현실을 만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2차 종합특검과 국민의힘·개혁신당이 발의한 통일교 특검은 각각 최장 170일의 수사 기한을 담고 있다. 앞선 6개월을 포함해 1년 내내 특검 수사만 이어지는 셈이다.
현재의 수사 시스템을 고려할 때 특검에 인력과 역량을 집중하면 국민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 반년간 120명에 달하는 검사들이 특검으로 차출되면서 민생 사건은 적체되고 있다. 법무부의 '검찰 장기미제사건 현황'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지난 7월 말까지, 3개월 이상 장기 미제 사건은 2만2564건에 달한다. 지난해 1만8198건보다 23% 증가한 수치다.
특검 수사가 마무리된다고 파견 나간 검사들이 모두 복귀하는 것은 아니다. 내란 특검에만 30여명의 검사가 남아 공소 유지를 맡을 예정이다. 추가 특검을 위한 대규모 인력 이탈이 현실화한다면, 일선 검찰청은 최소한의 수사와 공판 기능조차 수행하기 힘든 '기능 상실' 단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전세 사기와 보이스피싱으로 삶이 무너진 서민들의 절박한 호소는 일선 검찰청의 서류 더미 속에 방치되고 있다.
특검 정국의 연장은 민생 침해 수사의 미제를 늘리고 정의를 지연하는 대가를 요구한다. 정치권이 거대 담론과 정쟁에 매몰돼 특검이라는 칼날을 휘두르는 동안 국가가 제공해야 할 최소한의 치안 서비스가 흔들린다면 피해는 어디로 갈까. 평범한 시민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을 방치해서야 되겠는가. 진정한 정의는 스포트라이트가 터지는 화려한 조명 아래에 있지 않다. 국가 수사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돼야 시민들이 제대로 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자기 사건이 언제 처리될지 몰라 밤잠을 설치는 이들에게 '신속한 수사'라는 권리를 되찾아주는 것이 국가의 진짜 책무다.
곽민재 기자 mjkw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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