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정우의 작품 활동은 그 어느 때보다 왕성했다. 상반기 브로큰·로비에 이어 12월 윗집 사람들까지 무려 세 편의 영화를 개봉하며 배우이자 감독으로서 치열한 한 해를 보냈다. 그동안 감독 하정우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롤러코스터(2013)는 27만명, 허삼관(2015)은 9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고 로비는 25만명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다. 네 번째 연출작 윗집 사람들로 다시 관객 앞에 섰다. 1978년생 말띠 배우인 하정우는 2026년 말의 해를 맞아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질주하고 있다.
◆배우이자 감독…두 얼굴로 보낸 한 해
배우와 감독이라는 두 역할을 넘나들며 보낸 시간 속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하정우는 31일 “욕심을 많이 부리지 말자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그동안 내가 과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욕심을 내려놓게 된 것이 저한테는 큰 의미다”라고 고백했다.
지난달 3일 개봉한 윗집 사람들은 3주 연속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하며 관객의 입소문을 탔다. 각방을 쓸 만큼 서로에게 무심한 커플 김 선생(하정우)·수경(이하늬)이 밤마다 층간 소음을 일으킬 만큼 뜨거운 커플 현수(김동욱)·정아(공효진)를 만나 선을 넘나드는 상황을 그렸다. 스페인 영화 센티멘탈(2020)이 원작이다.
전작들에서는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했다. 더 많은 캐릭터, 더 복잡한 이야기, 더 큰 스케일. 하지만 윗집 사람들에서는 달랐다. 네 명의 캐릭터에 집중하며 밀도 있는 이야기를 완성했다. 하정우는 연출자로서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조급함에서 벗어나자 오히려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작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타협하지 않은 부분은 ‘말맛’이다. 대사 하나하나에서 드러난다. 하정우는 “오디션을 통해 김 선생, 현수, 정아, 수경 역의 리딩 배우를 뽑았다. 실제 배우들과 비슷한 음색을 가졌으며 연기 잘하는 분들을 모셔서 계속 대본 호흡을 맞췄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 대사를 계속 손봤다”라고 말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하정우는 “한순간도 허투루 흘려보내는 대사가 없도록 하자는 마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대사가 하나의 문학 작품처럼 완성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촬영 중에도 계속해서 대사를 수정하고 다듬었다. 전작들에서 받았던 피드백을 반영해 대사의 전달력을 높이는 데 신경을 썼다. 개봉을 향한 도전은 이렇게 세밀한 부분에서까지 놓치지 않는 데서 시작됐다.
◆감독과 배우 사이에서 연출과 주연을 동시에 맡는 일은 쉽지 않다. 스스로도 “이번엔 난이도가 높았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 이유를 묻자 하정우는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어려웠다”면서 “감독으로서 배우 하정우를 더 차갑게 다뤄보려 해도 답이 잘 안 나오고, 배우로서 캐릭터를 고민해도 그게 맞는 선택인지 확신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배우로서의 본능과 감독으로서의 판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숙제였다. 그럼에도 지난 한 해에 대해 “브로큰·로비·윗집 사람들까지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선을 다했던 1년이었다”라고 돌아봤다. 쉼 없이 달려온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부분이다.
흥행에 대한 기대를 묻자 담담하게 답한다. 하정우는 “때가 있는 것 같다. 그건 하늘이 결정하는 것 같다. 최선을 다해 영화를 만들고 홍보해야 한다. 그다음은 때와 하늘이 허락해주면 많은 분이 같이 해주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이번 작품 역시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과정에 충실히 하고자 했다.
◆새로운 무대를 향한 또 다른 도전 윗집 사람들의 홍보 활동을 마치고 2026년 감독 하정우는 배우 하정우로 돌아온다. 현재 tvN 새 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의 촬영에 한창이다. 2007년 드라마 히트 이후 무려 19년 만의 안방극장 복귀다. 빚에 허덕이는 생계형 건물주가 가족과 건물을 지키기 위해 범죄에 가담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이 드라마는 2026년 상반기 방송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