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쓰나미가 한국을 휩쓸고 있다. 33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최근의 쿠팡 사태는 이제 해킹 사태가 우리 모두의 삶과 결부된 ‘일상적 재난’이 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가정집 안에 달린 ‘홈캠’ 수십 만 대가 해킹되어 해외에 성 착취물로 팔리고, 수백 억 규모의 가상자산이 일순간에 증발한다. 대체 왜 우리나라에선 이런 일이 줄줄이 발생하는가.
‘한국은 해킹되었습니다’는 한국 사회의 해킹 사태에 관해서 치밀하게 다루고 있다. “해킹피해 기업의 90% 이상은 신고를 하지 않는다. 절대다수의 기업은 해커들이 원하는 대로 ‘몸값’을 지불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사태를 마무리리하고 있다. ” 우연히 들은 정부 관계자의 말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언론인인 저자들은 바로 해킹 사태에 관한 기획취재를 ‘범죄를 당했다는 것을 피해자가 스스로 은폐하는’ 아이러니를 본격적으로 파고 들었다.
심나영·전영주·박유진/사이드웨이/1만8000원 해킹에 당했으면서도 음지에 숨을 수밖에 없던 피해기업의 대표, 해커와 몸값을 담판 짓는 어둠의 협상가, 해커에게 영입 제의를 받았던 화이트해커, 보안업계 종사자와 관련 전문가 등 수백 명의 인물을 직접 만난 언론인인 저자들의 결론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렇다. “해킹이라는 범죄 앞에서 국가 기능은 완전히 멈춰있다. ” 이 책은 해킹이라는 재난은 우리 사회의 취약함과 한국적 토양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분명한 인재(人災)라고 거듭 강조한다. 무능한 우리 정부와 국회는 한국의 해킹 사태를 명백하게 방치했다는 것이다. 한국을 휩쓰는 해킹 사태의 총체적인 특성, 그 중에서도 전 세계의 지정학적 균열과 우리나라가 연결된 ‘해커들의 먹이사슬’을 복원하는 책의 내용은 매우 흥미롭다.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후 러시아와 중국 해커들의 활동과 어떻게 연결되고, 그런 일련의 흐름이 2025년 7월 SGI서울보증 해킹으로 이어져 우리나라 전세 세입자들을 곤경에 빠뜨렸다는 저자들의 분석은 역동적이고 치밀하다.
비트코인과 해킹의 긴밀한 연관성에 대해서 분석한 대목은 설득력이 있다. “누구의 감시도 없이 자금을 주고받을 수 있는 비트코인의 탈중앙성은 기존 금융시스템의 추적을 철저하게 무력화했다. ” 저자들은 그래서 암호화폐는 해커에게 완벽한 ‘가면’이 되어줄 수 있었음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논증한다. ‘한국적인 너무도 한국적인’ 먹고사니즘과 편의주의, 안일한 집단주의와 위계적 조직문화 같은 것들이 우리를 “해킹이라는 먹이사슬 생태계의 최하위계층”으로 떨어뜨렸다는 일침은 모두가 새겨들을 만하다.
청와대 안보특보를 지낸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명예교수는 “ 이 책을 읽으면 왜 우리가 해킹과의 싸움에서 계속 패배하고 있는지, 패배할 수밖에 없는지, 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후기를 남겼다. 그의 말대로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세세하게 다루는 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미국, 싱가포르, 이스라엘 등 다양한 국가들의 보안 체계를 검토하며 “정확한 진단, 실질적인 유인, 적을 압도하는 응전”이라는 청사진은 우리나라 정책결정자들에게 여러 시사점을 던진다.
박태해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