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연맹(KOVO)이 먼저 손을 내민 건 재외 동포의 자녀다. KOVO 이사회는 지난 10일 이사회를 열어 외국 국적 보유자라도 부모 중 최소 1명이 과거에 한국 국적을 보유했거나 현재 한국 국적자의 자녀로서 외국 국적을 가진 선수는 내년 여자부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다. 이들은 지명되면 국내 선수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 6시즌을 소화하면 자유계약선수(FA)도 얻을 수 있다.
오드리 박 이들에게 무한정 국내 선수들과 동등한 자격을 주는 건 아니다. V리그 구단 입단 후 6년 이내에 한국 국적을 취득해야만 이후에도 선수 자격을 유지할 수 있고, 미취득 시에는 자격이 박탈된다. 각 구단은 시즌별로 한 명만 선발할 수 있으되, 최대 2명까지 보유할 수 있다. 재외동포들에게 기회의 문이 열리면서 한국 국적자만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다는 기존 규정 때문에 V리그 진출을 접었던 미국 UCLA(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배구부 주전 세터 출신의 오드리 박(23·한국 이름 박혜린)도 V리그 진출이 가능해졌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이민을 간 재미교포 2세 사이에서 태어난 오드리 박은 미국 시민권자다. 1m80의 세터치고는 장신인 오드리 박은 안정된 경기 운영 능력과 블로킹, 리시브 능력도 보유해 내년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면 1순위 지명도 가능하다는 평가다.
다만 이번 이사회에선 홈 그로운 선수들에게까지는 문호를 개방하진 않았다. 이 때문에 한국 거주 경험이 없어도 한국 혈통에게만 우선권을 주는, 이른바 한국 특유의 ‘혈통주의’로 비쳐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인쿠시 실제로 최근 정관장의 대체 아시아쿼터 선수로 합류한 인쿠시(21·몽골)는 한국으로 배구 유학을 와서 목포여상을 졸업한 선수다. 고교 졸업 후에도 드래프트 참가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다가 MBC 배구 예능 ‘신인감독 김연경’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고, 정관장 입단을 통해 V리그 진출의 꿈을 이뤘다. 남자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의 바야르사이한(27·몽골), 한국전력의 에디(26·몽골)도 순천 제일고를 거쳐 인하대, 성균관대를 졸업했지만, 이들 역시 아시아쿼터 선수로만 V리그에 참가할 수 있었다. 현재 국내 고교, 대학 배구에는 아시아쿼터로 기용하기엔 다소 기량이 아쉬워도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한다면 얼마든지 상위 순번 지명이 기대되는 외국 국적 선수들이 여럿 있다. 고교, 대학을 한국에서 나온 외국 국적 선수들에게도 V리그 신인 드래프트 참가 자격을 열어야 한다는 배구계 목소리도 크다. 오히려 한국 귀화에는 더욱 적극적이라는 메리트도 있다.
바야르사이한
에디 KOVO 관계자는 “홈 그로운 선수들에 대한 논의가 아예 접힌 건 아니다. 일부 홈 그로운 선수들이 한국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노예 계약’에 준하는 악성 계약을 맺는 바람에 피해를 본 사례 등 특정 에이전트들의 독과점을 우려해 이번 이사회에선 재외동포에게 먼저 문을 열었다고 보면 된다”라면서 “이후 제도적 보완과 진행 상황을 봐서 홈 그로운 선수들에게도 V리그 신인 드래프트 참가 자격을 주어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KOVO가 문호를 개방하는 최종 목적은 V리그 활성화를 넘어서서 수준급 외국 국적 선수들의 한국 귀화, 이를 통한 국가대표팀의 경쟁력 강화다. 다만 이번 재외동포에 대한 문호 개방이 어느 정도의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구단들이 재외동포 선수들을 발굴하기엔 유인동기가 떨어진다. 본인들이 발굴해도 드래프트에서 뽑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KOVO의 해외 배구계를 향한 홍보와 해외에 인적 네트워크를 다수 보유한 에이전트들의 적극적인 발굴이 성공의 키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