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르포]한-말레이 FTA 체결, 동병상련에서 '환상의 조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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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르포]한-말레이 FTA 체결, 동병상련에서 '환상의 조합'으로

한국에서 동남아 지역과의 경제 협력을 논할 때 주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먼저 떠올린다. 그다음으로 자연스레 거론되는 나라가 말레이시아다. 지난 10월 27일, 양국은 숙원이던 자유무역협정(FTA)을 마침내 성사하며 경제협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러나 경제 현장에서 느껴지는 온도는 기대만큼 높지 않다.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모두 말하지만, "심리적으로 먼 나라"라는 거리감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문화 기반의 말레이시아와 한국 사이에는 오래된 교류의 기억이 적었고, 서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최근 변화의 흐름은 분명하다. 말레이시아가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강한 자신감과 명확한 전략을 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024년 11월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의 한국 방문은 그 상징적 출발점이다. 이 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는 단순한 우호 협력을 넘어 공식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다.

이는 곧 방산, 핵심 광물 및 공급망, 에너지, 기후변화 대응, 디지털·녹색경제, 교육·인적교류 등 실질적 협력 분야가 대폭 넓어졌음을 의미한다. 말레이시아가 한국과 '함께 미래를 설계할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가 선명해진 셈이다.


말레이시아의 이러한 한국 접근엔 역사적 뿌리가 있다. 1980년대 마하티르 모하맛 전 총리가 주도한 '동방정책(Look East Policy)'은 일본과 함께 한국의 산업화 경험을 주목하며, 아세안 국가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큰 자극이 되었다.

당시 한국은 "가난한 나라가 도전과 혁신으로 대역전을 이룬 성공 사례"로 기억되었고, 이 긍정적 인식은 지금까지도 말레이시아 사회 내에서 유효하다. 양국 협력의 정서적 기반이 이미 오랜 기간 축적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런 방향성은 2010년대 말레이 정부의 '동방정책 2.0'으로 부활하기에 이른다.


지정학적 맥락에서도 양국은 닮은 지점이 많다. 한국이 동북아의 중심축으로서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온 것처럼, 말레이시아는 역사적으로 동남아의 요충지로서 조정자 역할을 해왔다. 더욱이 최근 미·중 갈등의 수위가 높아지며, 말라카 해협을 둘러싼 공급망과 해양 안보 경쟁은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무대가 되었다. 이른바 양국은 서로 처지를 가장 잘 이해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얘기가 된다.

강대국의 관심이 집중될수록, 말레이시아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 상황은 한국에게도 중요한 기회가 된다. 아세안 전체와의 협력을 가속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연결점이 바로 말레이시아이기 때문이다.


산업적 기반에서도 공통점은 분명하다. 말레이시아는 글로벌 반도체 후공정 분야에서 중요한 생산 허브이자, 자동차 제조업 기반을 오래 유지해온 국가다.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첨단 제조 역량을 갖추고 있다. 양국 산업이 맞물릴수록 서로의 강점은 증폭되고 약점은 보완된다. 특히 수소 등 에너지 전환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기술력과 말레이시아의 풍부한 자원·입지 조건은 높은 상호보완성을 보여준다.


서로에게 꼭 필요한 말레이시아의 전략적 가치는 천연자원과 전기차 배터리 시대에서도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니켈·희토류·주석 등 핵심 광물과 안정적 에너지 기반은 미래산업의 토대가 된다. 특히 수소·재생에너지 전환을 향한 말레이시아의 빠른 대응은 한국 기업의 기술력과 결합할 때 높은 시너지를 기대하게 한다.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이 미·중 경쟁의 격전지가 된 지금, 자원과 후공정 기반을 모두 갖춘 말레이시아는 한국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다.

최근 말레이시아가 방산 분야에도 관심을 확대하며 새로운 협력의 장을 열고 있다는 점도 매우 주목할 만하다. 한국이 가진 글로벌 방산 경쟁력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파트너라는 의미다.


한편, 동아시아 정세는 당분간 불확실성이 짙게 드리울 전망이다. 미국과 일본의 새 행정부는 동맹 우선주의를 강화했고, 기술·산업 공급망은 미·중 경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남중국해와 한반도는 다시 긴장 국면이 되고 있으며, 현안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이 같은 환경에서 중견국들은 자신의 전략 공간을 지키기 위해 더욱 능동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가레스 에반스 전 호주 외무장관은 중견국 외교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했다. "중견국 외교의 동기는 한 국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국제적 도전에 공동대처가 무조건 낫다는 믿음에 있다. " 이러한 관점에서 말레이시아는 아세안 중심성을 실제로 견인해온 국가이며, 한국 외교가 아세안 전체로 뻗어나가는 데 있어 가장 현실적 교량이 된다. 동시에 희토류 정제, 반도체 장비, 수소·재생에너지 등 미래산업 공급망이 풍부한 파트너이기도 하다.


2026년이 올해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불확실성은 곧 중견국 연대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과 말레이시아는 지정학적 위치, 산업 기반, 외교 경험이라는 세 축에서 놀라울 만큼 정교하게 맞물린다. 서로의 취약성을 가리고, 서로의 강점을 배가시킬 수 있는 보기 드문 '환상의 조합'이 될 수 있다.

정호재 아시아비전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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