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 尹의 레드카드와 최소한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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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 尹의 레드카드와 최소한의 민주주의

가상의 TV 토론장. 사회자가 묻는다. "전·현직 대통령께 묻겠습니다. 2024년 12월 3일은 어떤 날이었습니까?"


이재명 대통령이 먼저 입을 연다. "불법 친위 쿠데타가 시작된 날이자, 국민이 맨몸으로 그 쿠데타를 평화롭게 막아낸 날입니다. " 윤석열 전 대통령은 "국정을 마비시키고 자유헌정질서를 붕괴시키려는 체제전복 기도에 맞선, 헌법수호책무의 결연한 이행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의회 독재권력의 30차례 인사 탄핵, 예산 삭감, 투·개표 해킹 가능성, 스파이 천국 속에서 비상계엄으로 국민께 호소했다"고 설명한다.


이에 이 대통령은 "국회로 향하는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고, 봉쇄된 국회 담을 넘도록 길을 연 건 국민이었다"고 받아친다. "헌정을 바로 세운 것은 대통령의 비상권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을 지킨 국민과 국회·법원·군이었다"며 "12월 3일을 '국민주권의 날'로 삼겠다"고 말한다. 윤 전 대통령이 "사법부를 장악하려는 불의한 독재정권의 폭주가 계속된다. 국민들께서 레드카드를 꺼내주십시오"라고 맞서자, 이 대통령은 "다시는 쿠데타를 꿈조차 꾸지 못하게 하는 제도와 문화를 만드는 것이 '빛의 혁명'을 완수하는 길"이라고 못을 박는다.


이 가상 토론은 실제 두 전·현직 대통령이 '계엄 1년'을 맞아 내놓은 특별성명과 옥중 입장문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윤 전 대통령(또는 지지자들) 논리는 여전하다. 허위를 걷어내고 현실을 드러내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출발점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붙들고 있는 논리는 크게 3가지다. 우선 그들은 당시 다수의 인사 탄핵과 예산 삭감, 입법 공방을 '국정마비'와 '체제전복 기도'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는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권한이자 민주주의 정상 작동 범위 안에 있는 행위다. 오히려 국회를 '국헌문란 세력'으로 몰고, 군과 경찰·정보기관을 움직인 비상계엄이라는 결단이 헌정질서를 시험대에 올려놨다.


'의회 독재'라는 프레임도 여전하다. 2022년 정권 교체에 성공한 야당 출신 대통령은 권력 강화 목적의 비상계엄으로 탄핵을 당해 다시 정권을 내줬고, 구속돼 내란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이런 제도적 견제가 작동하는 것을 두고 '독재'라고 할 수 있을까. 되레 독재의 그림자는, 자신을 견제하는 의회를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고 군(軍)을 앞세운 순간에 훨씬 진하게 드리웠다.



또한 각기 다른 성격의 사안을 한데 묶어 이른바 '위기의 총합'을 만들었다. 예산 삭감, 선거 관리 취약, 간첩 사건 등은 각각 엄중한 사안이지만 이를 한데 묶어 '비상계엄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약이다. '민주주의는 위기를 과장하고 예외적 상태를 일상화하는 선출된 지도자에 의해 서서히 무너진다'(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의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총을 든 대통령의 계엄'이 '야광봉을 들었던 국민'을 넘어설 수 없다는 점을 끝까지 깨닫지 못할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지만, 국민·국회·법원이 되돌려 놓았다. 그래서 너희 세대는 다시는 그런 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에서 산다"고. 그러려면 원칙은 하나다. 어떤 이유로도 주권자를 향한 계엄의 레드카드는 다시 꺼내져선 안 된다. 그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남길 최소한의 민주주의다.






임철영 정치부 차장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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