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창업 의지 꺾는 '무늬만' 생산적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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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창업 의지 꺾는 '무늬만' 생산적 금융

결국 핵심은 디테일에 있다.

이재명 정부가 '생산적 금융 대전환'을 표방하면서 내년부터 벤처 투자 시장에 대규모 자금이 풀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창업자들의 진입을 주저하게 만들고, 스타트업·벤처 대표들이 사업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각종 불합리한 관행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스타트업·벤처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 조항이다.

벤처 계약상 '연대보증 금지' 반쪽짜리 개혁

현실적으로 스타트업·벤처는 투자 유치를 할 때 '을'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불리한 계약 조항이 포함되어 있어도 자금 조달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서명하는 상황이다. 과거에는 창업자에게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계약 조항이 일반적이었다. 다행히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투자기관은 수년 전부터 연대보증을 삭제한 표준 계약서를 도입해 왔고, 최근 국회에서도 창업자 연대책임 금지 규정을 '고시'에서 '법률'로 끌어올린 '벤처투자촉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현재도 금융위원회 소관의 신기술사업금융사, 신기술사업투자조합, 사모자산운용사 등에는 창업자 연대책임 금지가 적용되지 않는다. 내년 BDC(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 도입으로 공모 자산운용사도 비상장 벤처투자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통합적인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표준계약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창업자 발목잡는 '투자자 개별 비토권'도 바뀌어야

최근 3년간 벤처 투자 시장이 냉각되면서 투자기관에 부여되는 사전 동의권 문제도 불거졌다. 정관 변경, 유상증자, 인수합병(M&A), 상장(IPO)등 주요 경영 의사 결정에 투자기관의 동의를 받는 것은 일반적이다. 문제는 모든 투자기관에 개별적인 동의권이 주어져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어떤 사업도 추진이 어렵다는 점이다.


유상증자 등 주요 사안을 추진하려면 일일이 모든 기관을 설득해야 하니, '속도'가 중요한 스타트업·벤처엔 치명적이다. 김성훈 한국벤처투자법학회장이 주장한 대로 개별 비토권 대신 집합적 동의권(투자기관 3분의 2 혹은 과반 동의시 통과)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VC에 영향력 있는 대형 금융사들이 변화 이끌어야

스타트업·벤처에 불리한 조항을 법적으로 배제하도록 강제하는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법적으로 특정 조항을 금지하더라도, 투자기관들은곧 자신들에게 유리한 새로운 조건을 고안해낼 것이다. 실제로 연대보증이 금지되자, 다양한 조건이 붙은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 등으로 그와 유사한 효과를 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투자기관들은 자신들도 출자자(LP) 보호를 위해 성실히 노력해야 한다고 항변한다. 그렇다면 투자기관에 영향을 미치는 출자자들이 직접 벤처에 불리한 계약서를 개선하도록 요구하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다. 실제 한국벤처투자가 모태펀드 투자기관에 표준 계약서 도입을 유도한 사례도 있다.


올해 5대 금융지주를 비롯한 대형 금융사들은 정부 정책인 생산적 금융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금융업이 대표적 규제 산업이란 점에서, 주요 금융사들은 역대 정부 정책에 자발적으로 동참해 왔다. 문재인정부 시절 금융지주가 산하에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만들어 직접 투자에 나선 사례도 있었다.


금융지주와 계열사는 국내 벤처 투자기관의 주요 출자자이며, 금융지주 산하 캐피털사와 자산운용사는 직접 벤처투자를 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벤처투자 사례를 벤치마킹해 금융지주 등 대형 금융사가 앞장서 표준 계약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공정 계약' 캠페인을 벌인다면, 업계 전반에도 긍정적 파장이 예상된다.


조시영 증권자본시장부 차장






조시영 기자 ibp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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