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기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국인 대상 H-1B(전문직 취업) 비자 발급이 뚜렷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H-1B는 관련 분야 학사 학위 이상이 요구되는 직종에서 신청할 수 있으며, 한국인들이 미국 기업에 취업할 때 가장 많이 활용하는 대표적인 취업비자다. 최근 미국 이민당국이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사현장을 급습한 사건과 맞물려 한국 기업들의 미국 현장 파견 인력 운영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8일 미국 국무부 산하 영사국이 매달 공개하는 '국적·비자종류별 비이민비자 발급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H-1B 비자 발급은 2024년 월평균 209건에서 2025년 1∼5월 131건으로 약 37% 감소했다.
한국인 H-1B 발급은 2024년 한 해 동안 총 2506건으로 월평균 209건이었다. 같은 해 1월 203건으로 시작해 7월 235건, 10월 236건 등으로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다가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취임을 앞둔 12월에는 478건으로 급증하며 정점을 찍었다. 정치적 변곡점과 맞물려 단기간 수요가 몰렸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1월 136건에서 2월 109건, 4월 110건 등 100건대 초반에 머물렀고 5월에도 173건에 그쳤다. 올해 1∼5월 누적 발급은 65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95건보다 줄어든 수치다. 이는 행정부 교체 이후 비자 심사가 강화되면서 발급 규모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흐름을 반영한다.
이 통계는 전 세계 미국 대사관·영사관이 실제로 발급한 비이민 비자 건수를 국가별, 비자종류별로 집계한 자료다. 미국 이민국이 매년 H-1B 쿼터를 추첨해 대상자를 선정하면 국무부 영사국은 해당 대상자에게 각국 대사관과 영사관을 통해 비자를 발급한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최근에는 연봉 조건을 더 중시하는 추세여서 초봉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 기업들이 불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이민국은 임금 수준을 더 중시하는 추세여서 초봉이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 기업들은 불리할 수 있고, 전체 신청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인도 IT인력이 고임금 조건을 제시하며 추첨에서 유리한 구조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1월 재출범한 뒤 H-1B를 비롯한 외국인 취업비자 기조는 한층 더 경직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H-1B가 특정 국가에 편중됐다며 제도 개혁을 압박했고, 행정부는 임금 수준을 반영한 가중 추첨 등 외국 인력 유입을 더 엄격히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학업·연수 비자인 F, J 비자 심사도 까다로워지고 불법 체류 단속까지 강화되면서 현장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한국 정부와 산업계는 반도체·배터리 등 전략산업 인력을 위해 한국인 전용 H-1B 별도 트랙을 요구하고 있다. 미 하원 영 김 의원도 한국 국적 고급 인재에 연 1만5000개의 신규 비자를 배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국내 재계 역시 비자 문제를 대미 투자와 연계된 핵심 과제로 제기하고 있다.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지난 5월 워싱턴DC 아웃리치에서 미 상무부와 연방의회, 주정부 인사들을 잇따라 만나 투자가 원활히 이뤄지려면 숙련 인력이 안정적으로 투입될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한미 산업협력이 단순한 금전 거래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우리 기업이 필요로 하는 한국 인력의 취업비자 쿼터 확보가 보장돼야 하며, 투자와 협력을 한 국가를 그렇지 않은 국가와 똑같이 대우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비판했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