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국회, 나쁜 정책의 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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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의 맥]국회, 나쁜 정책의 온상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의 대표만이 법률로 국민 권리를 제약할 수 있다. 국회는 예산의결권이나 국정감사 등을 매개로 국정에 대한 사실상 무제한 간여가 가능하다. 사법부와 행정부의 예산과 조직 모두 법률에 근거하며 크고 작은 정책도 법률에 근거한다. 권한이 크면 실수 가능성도 크다. 특히 정책이 그렇다. 대한민국 국회는 정책 실패의 온상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법안 발의에, 책임성이 거의 없다. 이번 22대 국회, 19개월 동안 발의된 법안은 무려 1만3000건을 넘겼다. 정부조직법, 노동관계법, 상법 등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도 있지만 대형마트 규제, 전기·전자제품 재활용 규제, 기업에 대한 인권·환경실사 제도 도입 등 하나하나 국민과 기업에 미칠 정책 법안이다. 법안이 자판기가 아닐진대 국회의원 1명당 400건, 이틀이 멀다고 발의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 부실함을 짐작게 한다.


국회는 많은 법안을 발의하고도 사전에 효과분석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대부분 발의 취지만 강조되고 실현 가능성과 효과성은 무시되기 일쑤다. 인지도와 인기를 먹고 사는 국회의원에게는 현안 즉시 대응이 똑똑한 법안을 만들기 위한 고민보다 중요하다. 언제부턴가 '정치적 옳음'도 작동한다. 실효성을 들어 반대라도 하면 중요한 법안에 왜 딴지를 거는 거냐고 맞받는다. 이슈 비틀기는 정치인의 전공이다.


물론 국회에는 법안 비용을 추계하기 위해 예산정책처가 있고, 실효성을 검토하는 입법조사처도 있다. 상임위원회 전문위원 안건검토도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법안 발의 전 이들 의견을 굳이 들을 필요가 없다. 미국처럼 행정부 반대의견을 수용하는 관행이 작동하지도 않는다. 법안은 국회의원 전속 재량이라 10명만 모으면 바로 발의할 수 있다. 의원 간 법안 발의 품앗이는 상시로 일어난다. 19개월 만에 1000건이 넘는 법안에 자기 이름을 올린 의원이 있다는 걸 과연 국민들은 알까. 심의과정도 문제가 많다. 공청회는 종종 상임위원회 의결로 생략된다.


국회의 과도한 행정부 영역 침해도 문제다. 국회가 법률을 정하면, 행정부는 그 시행을 위한 구체적 내용을 정한다. 행정부 권한의 과도한 침해는 권력분립 관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정책 대상과 맥락에 따라 유연하고 신축적으로 적용돼야 할 내용까지 법률로 정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투명성을 제고하고 책임성을 강화한다는 것이 보통의 명분이다. 국회가 정하면 투명하고 행정부가 정하면 투명하지 않다는 게 맞는 것일까. 법률 중 '모든'과 '항상', '직전 3개년도 평균 물가상승률 몇 퍼센트(%) 이하' 등과 같은 매우 구체적인 기준설정도 문제다. 필연적으로 획일성과 경직성 문제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행정부는 국회에서 통과된 무리한 법률 시행을 두고 골치를 앓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덧 12월이다. 매년 이맘때면 예산안 통과와 함께 민생법안이란 이름으로 무더기 법안이 통과된다. 이때쯤이면 '정쟁만 하던 국회가 드디어 일 좀 했다' 기사가 크게 나고, 흔치 않은 정당 대표 간 악수 장면도 등장한다. 명분이야 민생이고 공익이겠지만 특정 집단에 특혜를 주는 법안, 자기네 지역 밀어주는 법안 거래는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새해엔 국회도 개혁에서 말뿐만이 아닌 책임을 지는 국회가 돼야겠다.


이혁우 배재대 교수(좋은규제시민포럼 규제모니터링 위원장)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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