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지연된 재판이 '내란'을 연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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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지연된 재판이 '내란'을 연장한다

"이제 1년이나 돼서…기억이 잘 안 납니다. "


요즘 계엄 관련 재판 방청석에 앉아있다 보면 가장 자주 듣는 말이다. 증인들은 "그날 밤 상황이 흐릿하다", "정확한 대화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내란과 비상계엄의 진실을 가려야 할 법정에서 시간은 사실을 또렷하게 만들기보다 흐릿하게 덮고 있다.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이 흘렀다. 특검 수사를 거친 사건들의 무대는 이제 법정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재판은 4월 첫 공판 이후 9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반면 어떤 사건은 한 달 만에 결심에 들어가 선고만 남겨두고 있다. 결국 같은 내용인데, 재판부마다 속도와 온도는 전혀 다르다. 이 상태에서 '그날 밤의 일'이 정리됐다고 말하긴 어렵다.


시간은 중립적이지 않다. 계엄 당일 회의록·문자·CCTV는 그대로지만 사람의 기억은 흐려졌다. 증언이 "모르겠다"로 채워질수록, 피고인 측은 그 빈틈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방청석에서 듣고 있으면 진실에 가까워지는 느낌보다, 책임의 경계가 조금씩 옅어지는 느낌이 먼저 든다. 지연은 절차상의 문제가 아니라 내란 책임을 희석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 내란 수사가 끝났다는 말과 달리, 내란의 법적 단죄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셈이다.


구조적 문제도 있다. '그날 계엄이 내란인지 아닌지', '그날 밤 누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판단은 여러 재판부로 쪼개져 있다. 내란 우두머리, 방조, 중요임무 종사 혐의가 각기 다른 법정에서 다뤄진다. 같은 계엄 문건과 영상이 법정마다 화면에 반복해서 올라온다. 질문하는 얼굴만, 앉아 있는 피고인만 다르다. 결국 첫 판결의 결론을 나머지가 따라갈 가능성이 크겠지만, 만약 서로 다른 결론이 나온다면 국민은 어느 판결을 진실로 받아들여야 할까. 내란의 실체가 아니라 재판부 구성과 속도에 따라 역사가 나뉠 수 있다.


재판이 거듭될수록 방청석의 공기도 달라졌다. 처음엔 분노와 긴장으로 가득 차 있던 표정들이 이제는 피로와 체념으로 바뀌었다. 법정 밖에서도 "도대체 언제 끝나느냐"는 말을 내뱉는 이가 적지 않다. 끝났어야 할 '그날 밤'은 현재진행형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이 추상적인 문장이 아니라, 기다리는 사람들의 체감이 된 것이다. 계엄 1년, 사법부는 '어떻게 끝낼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 법과 증거에 기초한 분명한 판단, 재판부마다 엇갈리지 않는 일관된 기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속도로 이 사건을 마무리해야 한다. 계엄의 밤이 정말로 끝났다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지금 사법부가 져야 할 책임이다.






염다연 기자 allsal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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