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자역학은 물리학의 '끝판왕'으로 통한다. 필자가 아는 한 물리학과 출신이 들려준 이야기다. 그가 학부생 시절, 이 전공필수과목 하나 때문에 졸업을 하지 못하는 학생이 허다했다고 한다. 재수강을 하는 이는 흔하고, 최저 패스 기준인 'D'만 받게 해달라고 사정해서 겨우 졸업하는 이들도 있었단다. 공부깨나 한다는 학생들조차 양자역학 앞에서는 번번이 고개를 떨궜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대학 시절 일화는 이 학문의 난도를 상징처럼 보여준다. 프린스턴대 물리학과에 진학했던 그는 학부 과정 내내 거의 모든 과목에서 최고 점수를 받는 엘리트 학생이었다. 그러나 양자역학을 만나며 물리학자의 꿈은 산산이 깨진다. 베이조스는 자신이 12시간 동안 끙끙대며 풀었던 양자역학 편미분방정식 문제를 프린스턴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평가받던 친구가 순식간에 풀어내는 모습을 보고 '현타'가 왔다. 베이조스는 결국 물리학을 포기하고 컴퓨터과학으로 진로를 바꿔 창업가의 길을 걷는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베이조스는 "프린스턴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는 제가 물리학자가 될 만큼 똑똑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어렵기로 악명 높은 양자역학이 요즘 한국 서점가에서는 '핫한' 키워드로 떠올랐다. 최근 채은미 고려대 교수가 지은 '처음 만나는 양자의 세계'는 주요 서점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아무도 모르지만 누구나 알아야 할 최소한의 양자역학' '퀀텀의 시대' 등 쉽게 풀이한 개론서가 줄을 잇는다.
양자역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를 무대로 전자와 광자, 스핀과 파동함수 등 일상 감각으로는 절대 붙잡히지 않는 낯선 존재들을 파헤치는 학문이다. 잘나가는 물리학자들이 굳이 자신의 연구를 대중에게 풀어 쓰는 이유는 순수하게 자신의 세계를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대중은 양자 기술로 벌어들일 '돈'에 더 관심을 쏟는다.
양자컴퓨터와 양자통신, 양자센서 등의 기술은 미래를 바꿀 핵심 원리로 추앙받는다. 투자와 정책, 산업 전략이 한꺼번에 이 키워드로 몰려든다. 양자컴퓨터 업체 주가는 아직 매출도 미미한 단계에서 1년 새 수십%씩 요동치고 있다. 투자 커뮤니티는 "양자가 오면 세상이 바뀐다"는 기대로 들떠 있다. 올해 정부는 양자 관련 예산을 전년 대비 50% 이상 늘렸고, 세계 양자 기술 시장 규모가 2030년 수십조 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에서는 양자컴퓨터가 기존 암호체계를 무력화해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의 안전성을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런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커질수록 양자 개론서의 판매량도 함께 늘어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내 돈이 들어갈 기술이 대체 무엇인지 확인해야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리라. 정책 입안자나 기업인도 최소한의 개념 이해 없이 전략을 짜기 힘들다. 그리하여 '어려운 이론을 쉽게 설명하는 물리학자'가 이전보다 훨씬 더 자주 미디어에 얼굴을 내밀게 됐다.
노벨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먼이 "당신이 양자역학을 이해했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이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양자역학은 이제 교과서 속 난해한 수식이 아니라 시장과 권력, 일상의 선택을 조용히 조정하는 또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변신하고 있다. 꼭 투자자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개론서 한 권으로 지적 욕구를 채우고 기술·시대의 변화상을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박충훈 콘텐츠편집2팀장 parkjovi@asiae.co.kr
▶ 2026년 사주·운세·토정비결·궁합 확인!
▶ 돈 관리 성향, 테스트로 진단해 보기! ▶ 하루 3분, 퀴즈 풀고 시사 만렙 달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