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우가 2024시즌 KBO리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활짝 미소 짓고 있다. 사진=KIA타이거즈 제공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 것 같던 대들보를 끝내 떠나보내고, 새 판을 짜야 한다.
프로야구 스토브리그 초미의 관심사였던 자유계약선수(FA) 최형우의 KIA 잔류가 물 건너간다. 최형우가 10년 넘게 몸담았던 옛 친정, 사자군단과의 영입전에서 결국 무릎을 꿇는다.
왕조 주역의 복귀로 설레는 대구와 달리 광주의 분위기는 서글프다. 2017시즌을 앞두고 FA 100억원 시대를 열며 KIA에 입성했던 최형우와 9년 만에 작별한다. ‘잃었다’는 표현보다, ‘보내줬다’는 말이 적합하다. 협상 과정서 삼성에 미치지 못하는 조건을 들이밀었다. 붙잡고 싶은 의지는 있었지만, 내부에서 설정한 ‘선’은 끝내 수정하지 않았다. 사실상 직접 택한 이별이다.
리빌딩 버튼을 누른 셈이다. 1983년생 최형우는 2026시즌 43세 시즌을 맞는 노장이다. 이미 현역 최고령 타자 타이틀도 붙었다. 나이만 고려하면, 아름다운 과거와 작별하고 다음 10년을 준비하겠다는 KIA의 시나리오는 나름 합리성을 갖췄다고도 볼 수 있다.
최형우라는 이름이 붙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2017시즌부터 올해까지 KIA 타선을 떠받친 기둥이었다. 매년 100경기 이상을 뛰는 내구성과 함께 9시즌 누적 타율 0.306(4172타수 1277안타) 185홈런 826타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KIA 소속 타자 중 안타·2루타(260개)·홈런·득점(660점)·타점에서 모조리 1위를 휩쓴 선수다. 이 기간 골든글러브 3번(2017·2020·2024년)을 휩쓸었다. 올해도 지명타자 부문 수상이 확정적이다.
최형우가 2024시즌 KBO리그 통합우승을 차지한 후, 이범호 KIA 감독과 포옹을 나누고 있다. 사진=KIA타이거즈 제공 만점짜리 실력은 물론이고, 베테랑이자 에이스로서 후배들을 이끈 더그아웃 리더로 KIA가 한동안 잊고 있던 ‘우승 DNA’까지 깨운 선수다. 최형우 합류 이후, KIA는 2번의 우승(2017·2024년)으로 ‘V12’라는 영광의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최형우와의 이별에 단순 이적, 그 이상의 의미가 담기는 이유다. KIA 팬심도 요동친다. 녹슬지 않는 실력을 보유한 백전노장을 잔류시키는 게 낭만과 실리 모두를 챙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낭만에 큰 점수를 매기지 않았던 KIA의 판단 속에, 팬들이 바랐던 최형우의 광주 은퇴식은 이제 없는 일이 됐다.
새 판짜기에 돌입하지만, 다가올 시즌은 내내 물음표가 따라붙을 예정이다. 최형우 공백을 메울 방법은 마땅치 않다. 지명타자 자리에 김선빈, 나성범 등 수비 부담이 커지는 고참들이 들어가면서 신진 자원들이 나설 기회는 늘어난다. 하지만 당장 최형우만큼의 퍼포먼스를 기대할 수는 없는 건 자명하다. 잠재력을 터뜨릴 만한 특급 유망주도 쉽게 찾기 힘든 게 사실이다.
심지어 KIA는 이번 FA 시장에서 이미 주전 유격수 박찬호까지 놓쳤다. 지난해 35홈런을 때린 외인 패트릭 위즈덤과도 작별했다. 출루, 장타, 수비 등등 여러 요소에서 구멍이 뚫렸다. ‘윈 나우’를 외칠 수 없는 냉혹한 현실, 길고 긴 ‘리빌딩’ 터널을 목전에 둔 KIA다.
최형우가 2024시즌 KBO리그 통합우승을 차지한 후, 기쁨의 댄스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사진=KIA타이거즈 제공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