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느 겨울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2024년 12월3일 밤 9시40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긴급 브리핑을 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약 50분 뒤인 10시27분, 윤 전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 홀로 나와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발표했다. 귀를 의심할 정도의 발표 내용이 생방송으로 전파됐다.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
'국회 앞 시민과 군경 대치'·'국회 출입 전면 통제'·'국회의원들, 담 넘어 국회 진입'이라는 속보가 잇따랐다. 원·달러 환율은 급등했다. 언론사 편집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당시 금융당국을 취재하던 기자는 외환시장을 모니터링하며, 밤을 새웠다. 몇몇 후배 기자는 서울 시내에서 목격한 군 병력 사진을 찍어 공유했다. 취재를 위해 봉쇄된 국회 담을 넘은 동료 기자도 있었다. 190명의 국회의원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를 결의하기까지의 과정은 공포와 긴장의 시간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6시간 만에 계엄을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12월14일, 그는 국회 탄핵 소추로 직무가 정지됐다. 직무정지 112일 만인 2025년 4월4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요약된 결정문을 22분 동안 읽어 내려간 뒤 선고 시각을 확인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 '호수 위 달그림자'·'계몽령'이라는 주장을 기사에 담으며 '찬탄(贊彈)과 반탄(反彈)'으로 쪼개진 헌법재판소를 취재하던 기자에겐, 형용하기 어려웠던 비현실적 상황이 마침내 끝나는 순간이었다.
두 달 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고, 기자의 출입처는 헌재에서 대통령실로 바뀌었다. 1년 전 비상계엄이 선포된 용산의 바로 그 건물과 브리핑룸이 지금의 취재 공간이다. "장갑차와 자동소총에 파괴된 우리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울 시간(6월4일 취임사)"이라고 말한 이재명 대통령을 6개월째 취재하고 있다. 그날 국회를 둘러싸 계엄군을 막아섰던, 이제는 대통령실 참모가 된 그들을 만나고 있다.
기자는 종종 대통령실 출입 게이트를 지나 긴 복도를 걸으며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겨울밤, 대통령실 상황을 상상해 본다. '계엄 1년'을 하루 앞둔 오늘은 기자실로 이어지는 유일한 원형 계단을 오르며 스스로 물었다.
현재의 권력은 국민과 헌법 위에 서려 했던 과거 권력의 잔재를 온전히 청산하는 데 주저하고 있지는 않은지, 차디찬 그 겨울을 거리에서 보낸 이른바 '키세스단(은박 담요를 덮은 시민들)' 용기에 '진짜 대한민국'으로 응답하고 있는지, 정치는 그 겨울과 완전히 결별할 준비를 마쳤는지에 관해서….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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