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업계에서 직류(DC)가 대세라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DC 전용 배전 시스템을 공장 단위로 구축한 곳은 현재 전 세계에서 LS일렉트릭이 유일하다. DC 시장이 아직 태동기라는 점에서 산업이 성장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투자다. LS일렉트릭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LS일렉트릭에서 DC 관련 기술 연구를 주도해 온 배채윤 선행기술연구단장과 DC팩토리를 구축 중인 천안 사업장을 이끄는 문상천 공장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배 단장은 "DC가 부상한 건 고효율 때문"이라며 "교류(AC)를 한번 더 거쳐야 하는 기존 방식보다 변환 과정이 한 단계 줄어들기 때문에 전력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AC 배전 체계에서는 DC→AC→DC로 두 번 변환해야 하기 때문에 손실이 발생한다. 반면 DC 배전을 적용하면 변환 과정이 한 단계 줄어 전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특히 대규모 전력을 요하는 데이터센터에는 더 많은 전선을 깔아야 하는데, 직류 배전을 활용하면 사용되는 전선을 더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DC 효율성이 뒤늦게 인정받은 이유는 기술 변화 때문이다. 배 단장은 "과거에는 AC가 무조건 유리했지만, 지금은 반도체 기술이 발달하면서 전압 조절이 쉬워졌다"며 "HVDC부터 시작해 저전압 DC(LVDC)까지 기술 적용 범위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그동안 전력업체들이 DC팩토리 구상에 도전하지 못했던 건 대부분의 배전 설비가 AC 중심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걸 DC로 바꾸려면 설비를 전부 다 들어내고 새롭게 넣어야 하는데 투자 이후 실제 수익으로 나타나기까지 걸리는 투자수익률(ROI)이 최소 3년 이상 걸려 업체 입장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LS일렉트릭은 설비 전체를 DC로 바꾸었을 때 얻게 될 전력 효율을 고려해 이익이 크다고 판단했다. 오픈 데이터센터 얼라이언스(ODCA)의 'DC팩토리 효과 검증' 결과에 따르면 생산 설비를 전부 DC로 바꿨을 때 전력 효율이 14% 가까이 향상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투자 비용은 22억원에 달하지만, 1년에 2111MWh의 전력을 절감할 수 있다. 직류 조명만 교체했을 때보다 전체 시설을 전환했을 때 투자수익률도 5~6년 가량에서 3년으로 줄어든다. 게다가 천안 공장은 신규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시점이어서 DC 기반 설비를 처음부터 깔 수 있었다.
'DC에 15년 투자'…LS의 승부수
LS일렉트릭은 2010년부터 DC 기술 개발에 투자를 해왔다. 선행기술연구단 등 3개의 연구단으로 구성된 전력연구개발본부가 DC 관련 기술을 개발해왔다. 총 투자 규모만 2100억원, 연평균 140억원 규모의 자원이 투입됐다. 배 단장은 "DC 전용 장비들을 연구해온 지 7년 정도 됐고, 기초 연구부터 따져보면 10여년 전부터 계속 노력해왔다"며 "AC 쪽으로는 유럽, 미국보다 뒤처졌지만, DC 쪽은 우리가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시장 규모에 비해서 굉장히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LS일렉트릭은 DC 팩토리를 구축하면서 장비 국산화를 위해 노력했다. 배 단장은 "이곳에 들어간 기기의 70% 이상은 국산 기기"라며 "또 일부는 우리가 자체적으로 연구개발해 넣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 국내외에서 DC 산업은 태동기 수준이다. 이들은 AC 기반 전력 산업이 DC 기반 산업으로 전환하기까지엔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 단장은 "우리는 '퍼스트 무버'이기 때문에 위험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며 "우리는 굉장히 이 산업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산업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데이터센터에 DC 기기를 적용하려면 관련 설비 마련이 시급하다고 봤다. 공장처럼 1~5MW면 충분한 전력 규모와 달리, AI 데이터센터는 60~80MW는 기본, 120~200MW 규모까지 요구하고 있어 DC 핵심 기기의 용량을 키우는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 이 가운데 국내외에서 파일럿 형태의 DC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며, 반도체 변압기(SST), 차단기 등 차세대 장비를 보유한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데이터센터 건립은 전력망뿐 아니라 한전 연계, 용수 확보, 지자체 행정까지 얽히면서 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이들은 이런 점이 DC 도입 논의를 더욱 빠르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문 공장장도 "한전도 발전소를 무한정 늘릴 수 없고, 원전·재생에너지 이슈가 계속 나오고 있다"며 "결국 관건은 에너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배분하고 사용하는가'이다. 그 관점에서 DC는 필연적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업계 전반에서 점진적으로 관련 설비와 시설을 갖춰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발전 단계에서는 DC 기반 소스 확대가 필요하고, 배전·기기 단계에서는 한정된 전력을 최대한 손실 없이 사용하는 기술이 요구된다"며 "물론 전 과정이 한 번에 DC로 바뀌기는 어렵지만, 발전원(소스)과 부하(기기·설비) 단계를 나누어 단계적으로 DC 기반 시스템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DC로 향하는 업계, 제도 뒷받침돼야
문 공장장은 최근 DC 기반 전력망을 자체적으로 구축하려는 고객사가 늘어나면서 기존 AC 구동 장비를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을 벗어나 DC 전용 구동 솔루션을 요구하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DC 전용 드라이브를 공급해주면 이를 DC 전력망에 바로 연결해 쓰겠다는 요구가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며 "이를 본격적으로 하려면 생산 장비뿐 아니라 냉각·공조·조명·전력 제어 시스템 등 각종 기기가 AC 중심에서 DC 전용 기기로 전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도 부재는 산업 확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국내에서는 DC 관련 안전 기준·계량 표준·설치 규정이 거의 없다. 배 단장은 "표준이 없으면 허가조차 받을 수 없다"며 "지금은 안전공사에 일일이 확인받아 가며 설비를 구축하는 초기 단계"라고 설명했다. 한국전력공사도 기존 AC 장비에만 적용되던 고효율 인증·보조금 혜택을 DC 제품에도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두 사람은 조만간 '직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문 공장장은 "앞으로는 전력은 효율에 대한 관점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며 "데이터센터, 재생에너지 시설 등에서 전력을 사용하는 양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고, 효율적으로 전력을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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