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곡의 재일동포 삶… 그래도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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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곡의 재일동포 삶… 그래도 희망은 있다
한·일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2011년 이후 14년 만에 공연 양국 수교 60년 의미 되새겨
남한과 북한 그리고 일본인 시댁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 세 딸은 사위들과 함께 작별 인사를 하고 먼저 떠나갔다. 25년 넘게 살아온 삶의 터전에 남은 건 용길이와 용순 부부뿐. 심야 철거작업으로 잔해만 남은 자신들의 집이자 식당이었던 ‘야끼니꾸 드래곤’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노부부는 다시 힘을 내서 길을 떠난다. “어제가 어떤 날이었건, 내일은 꼭 좋은 날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외팔인 용길이가 끄는 리어카 위로 내리는 벚꽃비는 더없이 아름다운 피날레를 만든다.

재일한국인 극작가·연출가 정의신의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사진)이 2011년 재연 이후 14년 만의 한국 공연을 성료했다. 2008년 서울예술의전당 개관 20주년과 일본 신국립극장 개관 10주년 기념작으로 만들어져 양국에서 큰 호응을 얻은 작품이다. 일본 간사이 지방 재일교포가 모여 사는 판자촌을 배경으로 재일동포 가족의 삶을 웃음과 눈물로 무대에 올렸다. 팔 한쪽을 잃고 전쟁의 상처를 안은 가장 김용길과 전처 사이의 두 딸 시즈카·리카, 현재 아내 영순의 딸 미카 그리고 영순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아들 토키오는 서로를 부양하며 힘겹게 살아가지만 재일동포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곳곳에서 갈등과 비극이 일어난다. 가까이 보면 희극, 멀리서 보면 비극인 인생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주인공 모습이 벅찬 감동을 준다.

특히 초연부터 참여한 영순 역 고수희와 재일교포 3세로 일본에서 활동 중인 지순, 함석집 지붕 위에서 가슴 뭉클한 고백을 외치는 토키오 역의 기타노 히데키 등 한·일 배우가 한 무대에서 어우러져 정의신의 세심한 연출하에 열연했다. 정의신은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은 살아가야 하고,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붙들어야 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지점에서 ‘희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작가라면 결국 희망을 써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미 일본 신국립극장 중극장에서 공연됐던 이 작품은 12월에 다시 신국립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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