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삼성전자가 내년도 메모리 사업의 지휘봉을 다시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에게 맡겼다. 메모리사업부장 자리에 대해 새 인물을 발탁하기보단 전 부회장의 겸직을 유지하며 안정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당초 반도체 업계에선 메모리 시장이 호황을 맞고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이 새로운 메모리사업부장 카드를 내세워 승부수를 띄울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파격 인사는 단행되지 않았다. 변화의 무리수를 두기보단 사업 경쟁력 회복을 유지하기 위해 안정적인 인사에 무게를 실으면서, 전 부회장에 대한 두터운 믿음을 보여준 인사라는 평가다.
지난해 5월 '반도체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전 부회장은 HBM 부진으로 위기에 봉착한 메모리사업부를 직할 체제로 두며 사업 전반을 지휘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최근 HBM3E 12단 제품의 엔비디아 공급을 확정한 데 이어 차세대 HBM4 납품도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3㎚(1㎚=10억분의 1m)에서 고전했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역시 올해 테슬라로부터 약 23조원 규모의 대형 수주를 따내며 대반전을 썼다. HBM 등 메모리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전 부회장의 사정에 따라, 파운드리의 지휘봉은 사실상 한진만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에 맡겨졌지만, 전체적인 운영과 방향 설정에 대해 총괄 지휘한 전 부회장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자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 2600' 생산 등 최선단 2㎚ 공정에서 진보된 성과를 내고 있다. 숫자로 평가받는 실적에서도 개선 흐름이 뚜렷하다. DS부문은 올해 3분기 영업이익 7조원을 기록했고, 4분기에는 10조원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D램 등 전체 메모리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내준 1위 자리도 탈환했다.

다만 전 부회장은 그간 같이 맡아온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원장 자리를 박홍근 하버드대 석좌교수에게 넘긴다. 회사는 박 교수를 신임 원장(사장)으로 선임하며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기로 했다. 박 원장은 1999년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된 뒤 25년 넘게 화학·물리·전자 등 기초과학 및 공학 전반의 연구를 이끌어 온 글로벌 석학이다. 교수 시절부터 SAIT와 공동연구 등을 수행하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내년 1월 합류 이후 양자컴퓨팅·뉴로모픽 반도체 등 미래 디바이스 연구를 주도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가 새롭게 지향하는 'AI 드리븐 컴퍼니(Driven Company)'로의 도약에 맞춰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누구보다 먼저 AI 시장에서 앞장서서 변화를 선도해나가는 기업이 되자는 일종의 캐치프레이즈다. 지난달 31일 창립 56주년 기념행사에선 전 부회장이 다시금 이를 강조했다. 그는 "변화를 뒤따르는 기업이 아니라 AI 혁신을 이끌어 가는 기업이 돼야 한다"고 했다.
전 부회장은 이날 인사로 더욱 강한 그립력을 갖추게 되면서, 향후 연구개발(R&D)에 필요한 재원과 신사업 추진에 요구되는 예산 등을 과감히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7일 회사가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를 사업지원실로 상설화한 뒤 실장 자리에 오른 박학규 사장과도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도 주목받고 있다. 박 사장은 반도체 사업의 상황과 필요한 투자 내역 등에 대해서도 밝은 인물로 전해진다. 전 부회장은 앞서 "AI는 이미 산업의 경계를 허물어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면서 "삼성전자 고유의 기술력과 AI 역량을 본격 융합할 것"이라고 청사진을 밝힌 바 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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