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중인 재판소원 제도 도입을 두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정면으로 맞붙었다. 재판소원을 4심제라고 하는 것은 “헌법심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란 헌재 입장에 대해 대법원은 “현실을 도외시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대법원은 재판소원 도입에 위헌성 문제가 없다는 헌재 주장에 대해서도 “헌법 해석권한을 두 기관에 나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려 한 우리 헌법체제에 반한다”며 공론화와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 종로구 헌법재판소 모습. 뉴스1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18일 ‘재판소원’에 관한 Q&A 참고자료’라는 제목의 10쪽 분량 문건을 언론에 배포했다. 헌재가 설연휴 직전인 13일 ‘재판소원 도입 관련 FAQ’이란 이름의 26쪽 보도자료를 배포한 데 대한 반격이다. 양 기관은 헌재가 법원의 확정 판결을 취소하는 재판소원이 우리 헌법상 허용되는지 여부를 두고 입장이 극명하게 갈렸다. 헌재는 헌법재판권이 헌재에 귀속된 만큼 재판소원의 헌법적 근거가 명확하다는 입장이다. 재판소원이 권력분립 원칙이나 사법권 독립을 침해한다는 주장 역시 헌법상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반면 대법원은 헌법이 헌법해석 권한을 법원과 헌재에 나눠 부여했고, 구체적 사건에 대한 분쟁 해결인 사법권은 헌법상 법원에 있다고 반박했다. 대법원과 헌재는 각자 다른 단계에서의 헌법 최종 해석기관이라는 것이다.
먼저 헌재는 “헌법 제111조 제1항은 헌법재판권을 헌재에 귀속시킴으로써 재판소원의 헌법적 근거를 분명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헌법 111조 1항은 1∼5호에 걸쳐 △법원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심판 △탄핵 심판 △정당 해산 심판 △국가기관 상호간 권한쟁의 심판에 더해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을 헌재의 관장 사항으로 열거했다. 이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 심판’에 재판소원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헌법 107조가 법률 위헌 여부는 헌재에, 재판의 전제가 되는 명령·규칙·처분 위헌 여부는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심사’하도록 권한을 나눈 점을 반박 근거로 제시했다. 대법원은 “(재판소원 도입시) 사법권을 포함한 모든 국가권력의 통제 권한이 헌재에 집중된다”며 “이는 헌법의 최종 해석권력을 분립시킨 주권자의 의사를 뒤집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도 15일 ‘재판소원 도입 법안의 위헌성 및 부작용’이란 글에서 “헌법 111조 1항은 헌재에 백지위임을 한 것이 아니다”면서 “해당 조항은 헌재의 관장사항을 ‘한정적으로 열거’한 것이며, 우리 헌법은 법률을 통해 헌재 권한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 않다”고 분명히 했다.
◆“고비용·저효율 소송지옥” vs “잘못된 재판 바로잡아야” 법조계에선 판결을 취소하고 다시 재판하게 하는 구조는 실질적으로 재판 단계를 하나 더 추가하는 4심제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대법원은 “재판소원에 이어 취소재판과 그에 따른 후속 판결, 이에 대한 새로운 재판소원을 거듭”하는 무한 소송지옥에 빠지게 될 것이라 우려했다. 소송의 장기화와 확정된 재판도 취소될 수 있다는 법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국가·시장·행정의 예측가능성이 떨어지고 거래비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헌재는 “분쟁의 신속한 해결이란 가치를 희생하더라도 잘못된 재판을 바로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헌법소원이 인용돼 재판이 취소되는 경우는 전체 분쟁 사건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법조계에선 ‘극히 일부만’ 인용되는 재판소원 제도 도입으로 인해 결국 기각이나 각하될 나머지 다수 사건들이 장기간 법적 불안정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나온다.
◆일선 판사 “재판소원 모델 독일, 한국과 헌법체계 달라”
헌재는 “독일 등에서 법원을 중심으로 한 종래의 사법권이 전체주의 또는 권위주의 독재체제를 방어하기는커녕 이에 협력한 과거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판소원을 도입한 비교법적 교훈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힘을 실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한윤옥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13일 법원 내부 게시판인 코트넷에서 ‘재판소원에 대한 대륙법계 학자들 및 헌재 논리의 헌법상 오류’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는 연방헌법재판소가 사법권을 행사하는 유일한 연방최고기관이라고 명시돼 있는 독일 기본법과, 사법권을 행사하는 유일한 최고기관을 미국처럼 대법원으로 명시한 한국 헌법의 차이를 간과한 치명적 오류”이라고 비판했다.
모성준 사법연수원 교수는 14일 코트넷에 올린 ‘재판소원 논의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에서 “진정한 사법 개혁은 헌법 규정을 우회하는 기이한 심급 구조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실심에 전폭적으로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해 재판의 완결성과 설득력을 높이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혜진 기자 janghj@segye.com